“서울에 지하도가 생기기 전부터 여기서 박스를 깔고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갈 곳 없는 사람들의 쉼터가 많이 없어졌어요. 나가라는데 갈 데가 없어요. 억울합니다.”

22일 오전 서울역 광장에서 홈리스행동 등 7개 시민사회단체가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방침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50대 노숙인 남선우씨는 “한밤중에 서울역에서 노숙인을 쫓아내는 것은 너무한 것 같다”고 했다. 홈리스행동 등은 이날 “노숙인은 빈곤의 극단적 형태일 뿐 청소대상도, 단속대상도 아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유만으로 공공연한 사회적 차별과 탄압이 용인된다면 인간의 보편적 권리는 가진 자들만의 전유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비판했다.

쉴 곳은 어디에 22일 서울역사 앞 벤치에서 노숙인들이 잠을 자고 있다. 코레일은 22일부터 서울역사 내에서 밤에 노숙하는 것을 금지하고 노숙인을 쫓아내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이들은 이날 오후 7시 다시 서울역 광장에 모여 1박2일 문화제를 열었다. 시원한 형, 야마가타 트윅스터, 박기태 등 인디밴드들이 공연을 시작했다. 비가 왔지만 노숙인 60여명은 박수를 치며 공연을 즐겼다. 노숙 생활 3년째인 김모씨(61)는 “지금 비가 와도 갈 데가 없다”며 “밀어붙이기식으로 하지 않고 확실한 대책을 세운 뒤 보내야 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가 돈 있으면 여기 있겠나”라며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차이가 이렇게 심하다”고 말했다. 인디밴드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공연 도중 노숙인 10여명과 함께 서울역사 안으로 들어가 “노숙인 강제퇴거 철회”를 외쳤다.

앞서 코레일은 22일 자정부터 서울역에서 노숙을 금지했다. 코레일은 21일 오후 11시20분쯤부터 노숙인을 퇴거시키기 위한 안내방송을 실시했으며 22일 오전 1시30분 역사의 철문을 내렸다. 경찰관들이 누워 있는 노숙인들을 깨우는 과정에서 일부 욕설이 오가기도 했지만 심한 승강이는 벌어지지 않았다. 서울역은 이날 오전 4시20분쯤 다시 역사를 개방했지만, 오전 7시까지 노숙인들의 출입을 제한했다.

박종승 서울역장은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퇴거 조치를 하고, 역사 안에서 잠을 청하는 행위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단속할 것”이라며 “노숙인 문제는 역사 안에서 재워준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정부, 지자체 등에서 재활 지원과 쉼터 제공 등을 통해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규진 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부장은 “노숙인들이 마치 예비 범법자인 것처럼 내몰고 있는 반인권적 실태에 분노한다”며 “이는 단지 노숙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모두의 권리가 무너지는 신호탄”이라고 밝혔다. 최예륜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도 “처음에 ‘강제퇴거’라는 말을 쓰다가 ‘야간취침’으로 용어만 바꿨다”며 “한국 사회에선 누구나 집과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릴 수 있다. 공공역사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8222149215&code=9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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