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도 위로도 충분하지 않은 글. 축하도 위로도 아닌 ‘무언가’를 주신다면 받습니다. :)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 선정 됐다.

 현 사회에서 임노동을 하는 것은 축하 받을 일일까, 위로받을 일일까. 
 둘 다 일수도, 둘 다 아닐 수도 있다.

 

면접 보는 와중에 틀린, 면접관에 의도에 맞지 않는 답변을 한 참가자가 손을 떨고 있었다. 만일 기업이 예술가를 도구처럼 다루고 소통과정에서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임한다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이었다. 그녀는 전체적인 프로젝트가 중요하니 자신이 거기에 맞춰서 우선 프로젝트를 끝낸다고 하였다. 난 그 말이 이 사회에서의 ‘틀린’ 정답임을 알고 있지만 동의하지 않기에 나의 주 무기인 실존 철학을 격양돼서 늘어놓았다. 어이없게도 거기에 있는 면접관인 예술가는 나의 의견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했고,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매번 정답에 빗겨나는 답변으로 삐딱하게 면접에 임한 내가 선정되었다.

 

 다행스러운 건 내가 예술가로서 그 안에 있다는 것이다. 지원 소개서를 쓰면서 면접을 보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합격 여부도 있겠지만 그 안에서 나의 존엄성을 지켰는지 이었다. 어떤 걸 더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조차 모르겠다. 자기소개서는 가사를 쓰는 것처럼 썼고, 면접은 내 철학을 말하고 나누는 시간처럼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재미있었다.

 또한 이건 임노동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 좀 더 수평적인 관계이라는 점. 예술가로서 그 안에 있기에 노동에서의 소외를 조금은 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점. 그래서 내가 할 마음이 생긴 것이다.

 

 얼마 전 똑같은 이야기를 했던 내 친구가 본다면 ‘아직 배가 덜 고팠구나’ 라고 할 만한 상황이지만,

너무나 배가 고픔에도 아직은 지키고 싶었다.

 

 임노동은 두 가지 이유에서 축하하기에 충분치 않다.
대학입시 저럼 누군가의 합격이 누군가의 경쟁에서의 탈락인 점, 또 하나는 임노동이 경제적 안녕을 손에 쥐어줄지언정 정말 그 안에서 인간이 안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로할 수 없는 이유는 한가지다. 누구도 벗어날 수 없기에 위로는 거울에 반사될 것이다.

 

 다행히도 곧 돈이 생기겠다. 실재하는 빚도 갚고 마음의 빚고 갚고 일용할 양식도 생기겠다.
그리고 돈 때문에 멈췄던(다른 이유도 있지만) 음악 작업을 빨리 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임노동에 임하는 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항상 빗겨 설려고 하지만 항상 나를 쫒아오는 #임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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