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미더머니’라는 대학,
래퍼들은 대학거부 할 수 있을까?
시원한 형
쇼미더머니는 어떻게 대학이 되었나?
알다시피 한국은 학력사회다. 대학졸업장과 스펙이 인간이 고임금의 대기업에, 혹은 그보다 낮은 임금의 중소기업 정도에 들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 된다. 그래서 인간들은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을 한다. 이 게임에서 소수는 성공하고 다수는 패배한다. 평범한 인간들은 룰을 만들 권한이 없고 경쟁이라는 절대적인 진리로 인해 좋든 싫든 태어남을 당하는 순간 참가자로서 싸울 수밖에 없다. 적어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2011년부터 <투명가방끈>이라는 단체에서 활동 중이다. 이번에 출판된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라는 책에서의 대학거부자들과, 현실에서 고졸이하의 학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왜 이렇게 많은 이들이 대학에 진학할 수밖에 없는지를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대학에 가지 않은 대부분은 비정규직으로 불안정노동을 하며 저임금으로 살 수밖에 없다. 반면에 서울 및 수도권의 주거비와 생활비는 결코 무시 못 할 가격이다. 비정규직으로 한 달 꼬박 일해 봤자, 돈을 모으기는커녕 문화생활, 품위유지와 같은 삶을 위한 지출은 어렵고 단지 생존만이 가능할 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어른’들은, 사회는, 대학의 선택을 강제한다. 이 ‘현명한’ 선택이 사회 구성원 전체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힙합 신(scene)의 이야기다. 래퍼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공연수익과 음반/음원 판매수익, 그리고 레슨이다. 그 외에 대부분의 래퍼들은 생계를 위해 알바를 하거나 아니면 직장을 다니면서 투잡을 할 수 밖에 없다. 래퍼의 객관적 기준을 무엇으로 삼아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활동하고 있는 래퍼의 수에 비해서 음악수입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래퍼의 수가 극히 적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글을 통해 지금 당장 모든 래퍼들의 생계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구조적인 문제의 해결을 통해 더 많은 수의 래퍼들이 생계에 대한 걱정을 덜고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더 좋은, 더 다양한 음악이 만들어질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구조적인 문제 몇 가지를 꼽아보자면, 첫 번째로 너무나도 유명한 ‘음원분배율’이 있다. 괴상하게도 음악을 만든 창작자보다 음원사이트가 가지는 비율이 더 높다. 음악가가 음원 전체 스트리밍에 동의해야만 음원사이트 등록이 가능 하고 심지어 음원정액제라는 말도 안 되는 규정으로 헐값에 음원을 판매하고 있다. 가까운 일본이나 아이튠즈의 분배율을 봤을 때, 노예의 대접이다.
둘째 문제는 페이 문화다. 홍대인디신의 No pay 관행과 결정적으로 ‘월드디제이페스티벌’ 기획측이 보인 뮤지션에 대한 존중 없는 태도, 밴드의 실비도 나오지 않는 페이 지급으로 인해서 뮤지션들은 월드디제이페스티벌을 보이콧했다. 그 ‘거부’를 바탕으로 U-day Festival 1이라는 또 다른 대안적인 페스티벌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 뮤지션들의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뮤지션 유니온’이 탄생했다 2.
클럽을 운영하는 것은 클럽주의 측면에서도 비싼 임대료를 부담하면서 문화를 위해 많은 부분 기여하는 것이다. 때문에 공연의 수익이 적다면 페이가 적거나 없는 것도 수긍이 가며, 많은 관객을 모집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뮤지션과 클럽 주 모두의 책임이다.
다만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재능기부라는 이름의 재능착취가 성행하고 있고 심지어 정부기관 혹은 CU, CGV 같은 철저히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장소에서 “‘재능 있는 당신’에게 ‘무대를 제공’합니다.” 와 같은 빤히 보이는 얄팍한 수로 무대에 굶주린 뮤지션을 기만하는 역겨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음악 사이트에 올라오는 공연섭외 글을 보면 ‘페이’항목이 적혀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화를 해서 물어보면 ‘예산이 없어서, 예산 편성이 안 되어서 페이가 없다, 죄송하다.’라는 답변을 듣곤 한다. 공연이나 축제의 기획에 거액의 예산이 지급 되는걸 알고 있다. 게다가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는 월급을 받고 있는데, 뮤지션의 페이를 예산에 측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담당자가 사과를 해야 할 도의적인 문제가 아닌 노동의 대가를 배제하는 정치적 문제이다.
여기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정부기관 혹은 특정규모 이상의 단체에서 주최하거나 특정 기업에 홍보에 이용되는 상업적인 용도의 공연에서는 일정 금액 이상의 페이를 지급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 기준은 음악가들이 만들어야 한다. 음악가들 스스로도 페이를 지급하지 않은 공연이 전체적으로 음악가의 권리를 낮추는데 일조하고, 결국 자신에게 불이익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무조건적인 참여를 멈춰야 한다.
셋째는 지역 음악 신의 구축이다. 사실 서울에도 홍대와 몇몇 지역 말고는 문화시설이 거의 없다. 이것은 특정지역의 집값을 올리는 문제가 되고 또한 특정지역에만 문화시설이 집중되면 그 외에 지역에는 문화적인 소외가 발생한다.
지역 음악 신의 구축은 다양한 장소에서 문화가 꽃핌으로 일상과 예술의 경계가 낮아지는 장점 외에도 평행선이라고 생각 되던 예술과 정치의 접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 예가 (구)두리반이다 3.(이하 두리반) 두리반은 재개발 철거 투쟁의 긍정적 선례를 수립 했으며 음악인과 지역의 연대 모델이 되었고 자립음악생산조합 4이라는 음악인 조합의 모태가 되었다.
문화시설의 집중은 젠트리피케이션 5을 낳고 결국 예술가와 상인들의 노력, 열정으로 만들어진 경제적, 문화적 가치를 건물주와 프랜차이즈라는 자본이 고스란히 훔쳐가는 일이 발생한다. 물론 많은 뮤지션과 기획자들이 몰라서 지역 신을 만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말 어려운 일임을 알지만 필요성을 부정 할 수 없다. 한 편 래퍼 화나가 광흥창에 설립한 ‘The Ugly Junction’ 6은 주목할 만하다. 뮤지션의 자생적 환경이 무너지고 대형미디어의 경쟁적인 프로그램이 유일한 기회인 와중에 그 안에 포섭되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대안적인 방법을 찾아가려는 취지 때문이다.
넷째는 음악가의 변화다. ‘성공해서 세상을 바꾼다.’라는 말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기만이다. 성공한 소수만이 발언의 권위를 획득하고 권력을 갖는 것 자체가 이미 승자독식의 논리 안에 포섭된 것이고, 그 자리에 올라서면 자본과 상위계층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상위계층에서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 줄 사람을 그 자리에 올리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자리에 올라간 이는 이미 세상을 바꿀 필요가 없는 상위 계급인 이유에서다.
여기에 대한 해답으로 스스로 ‘자립음악가’라 칭하는 자립음악생산조합의 발기인이자 조합원인 ‘한받’은 “사람들과 연대하면서 함께하는 기쁨을 얻고 경쟁이 아니라 상생의 음악, 그것을 통해서 자립을 한다.”고 했다. “기존에 있던 채널들에 자신을 가져다 바치는 것이 아닌 자기의 채널을 가지고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서 관계를 확장한다.” 자립음악을 하면서 성공에 대한 의미 자체도 변했다고 했는데 “자립음악가라면 개인이 돈을 많이 벌고 많이 알려지는 것을 지양하는 것이 맞고 실패하더라도 연대를 통한 관계 맺음은 성공이다. 사회적 시선의 성공과는 반대의 성공의 기준을 가져야 한다.” 라고 말했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미학 기준의 변화, 연대와 계급적인 이익을 위한 음악과 행동이다.
물론 뮤지션 스스로도 기술적인 발전과 창의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정체되지 않는 새롭고 좋은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 다만 이 담론은 지루하게 반복되고, 많은 경우 구조의 모순을 개인의 노력과 실력 부족 문제로 은폐시킨다. 이 글에서는 길게 언급 않겠다.
마지막으로 음악을 듣는 향유자의 변화다. 향유자는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음악을 선호할 자유가 있다. 지금껏 힙합 신에서는 그러한 기준으로 음악이 선호되어 왔다. 그러나 절대적인 ‘선호’는 알게 모르게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이번에 ‘쇼미더머니’에서 문제시 된 송민호의 가사 7에서 균열이 온 세상에 드러났다. 콘텐츠가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취향에 맞아도, 자신이 속한 계급이나 소수자를 차별/혐오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선호를 지속할 수 없다. 위의 예 말고도 여성혐오 발언을 했던 장동민의 과거가 알려지면서 tv에 나오는 것 자체를 보기 싫다는 의견이 많다는 점, (실제로 하차 요구 1인 시위와 sns에서의 꾸준한 방송퇴출 요구가 이어졌다.) 힙합 신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블랙넛의 문제의 가사와 일베 인증으로 인한 비판 역시 같은 맥락이다. 미학은 많은 경우 정치적 선호를 가진다.
그러나 아직까지 힙합향유자들의 대다수는 힙합가사에 들어가는 승자독식 논리, 여성 및 소수자 비하/차별의 표현을 문제라고 느끼지 못한다. 이것은 향유자의 정치적 성숙과 인권 감수성의 문제이고, 교육과정에서 그것을 배우지 못하고 경쟁 이데올로기 8 안에서 차별과 폭력을 체화한 이들에게 주어진 인식의 경계이자 한계이다.
스웩알러지 (Swack Allergy)
<문제> 다음 중 정치적인 문장을 찾아보시오.
1.내가 형이니깐 말 놔도 되지?
2.(광고)엄마가 해준 집밥 그대로의 맛!
3.2016년 투명대 합격자 가방고등학교 홍길동
4.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의 자질이 없다.
문제의 답은 문단의 마지막에 공개하겠다. 앞 문단에서도 조금씩 단서를 제공했지만 음악은 나아가서 예술은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콘텐츠다. 단순히 가사(텍스트) 뿐만 아니라 방송/엔터테이먼트와의 역학관계, 예술에 창작에 영향을 주는 요소 역시도 정치적이다. 이데올로기는 삶의 스며든 관념들로 이미 인간의 행동이나 사상, 생활 방법 등을 구속하고 있다. 하지만 숲속에서 숲을 볼 수 없듯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삶의 이데올로기가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기 힘들다. 게다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몰라도 먹고 사는데 지장 없고 심지어 그런 불온한(?)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 좋은 직장에 취직해 애완견이 될 기회를 박탈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래퍼들의, 향유자들의, 일반 대중들의 의식은 ‘Just music’, ‘음악은 음악일 뿐’ 이라는 인식으로 지배된다.
이 사회에서는 매년 연례행사처럼 입시경쟁으로 인해 고등학생들이 자살하고, 취업이 꿈이 되어 스펙을 쌓기 위해 자신의 삶을 착취당한다. 기균충 9, 지균충 10, 지잡대 같은 학력차별과 혐오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고 있다. 여성,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성형한 사람을 대상으로 ‘성괴’라는 낙인을 찍는 등의 외모차별도 심각하다. (이것 말고도 무수히 많지만) 이것들은 모두 함께 살고 있는 특정 계층 및 소수자들에게 대한 폭력이다. 따라서 이미 경쟁지상주의와 차별, 혐오의 이데올로기로 가득 찬 사회에서 래퍼들의 ‘스웩(Swagger)’은 단순한 기믹(gimmick)이나 문화적 특성뿐만이 아닌 정치적 스탠스일 수밖에 없다.
음악은 나아가서 예술은 향유자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부조리에 저항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해방의 시간을 부여하기도 한다. 스웩이, 멋진 래퍼에 대한 동경이나 대리만족을 통한 동기부여로써의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멋이 특정 계층을 차별하고 혐오함으로써 성립된다면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것에 대한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스웩은 어쩌면 힙합문화를 지탱해온 큰 줄기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함으로써 전염병처럼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나 역시 힙합음악의 팬으로서,특히 한국힙합에서 기술적인 부분를 넘어 정치적인 부분까지도 온전히 마음을 줄 수 있는 음악과 이런 ‘정치적’인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큰 괴로움을 느꼈다. 때문에 난 지금 이 누군가에겐 ‘불필요한’ 논란이 너무나 반갑다.
난 꿈꾼다. 스웩이 타인을 차별/혐오하지 않는,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멋을 나타낼 수 있기를, 그 성숙한 멋을 위해 필요한 것은 스웩(Swack) 11이 아닌 스웩알러지(Swack allergy)다. 꿈은 눈을 감고 꾸는 것이지만 난 눈을 감고만 있진 않을 것이다.
*정답은 1,2,3,4 번 모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쇼미더머니에 안 나가냐고 묻지 마라.
[사진 00]
이 글의 제목을 보면서 근본적인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왜 ‘거부’냐고. 언급하기도 싫지만, TV를 통해 봤던 끔찍하고 충격적인 장면을 통해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7월 17일 금요일 ‘Show Me The Money Season 4 EP 4’에서 12, 갑작스럽게 미션3에 통과한 래퍼들을 새벽에 방송국으로 불러냈다. 스눕독(snoop dogg)이라는 전설적인 래퍼를 데려다 놓고 참가자들에게 프리스타일 싸이퍼(Cypher) 13를 시켰다. 문제는 제한시간 10분을 부여하고 4명을 탈락 시킨다는 규칙이다. 결과적으로 10분 안에 랩을 해야 됐고 따라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서로 마이크를 뺏어서 랩을 해야만 했다.
그 장면은 너무 끔찍했고 래퍼로서, 한 인간으로서 분노가 치밀었다.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이를 보고 래퍼들이 자존심이 없다고 비난하는 이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많은 이들은 동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왜냐면 인간들은 대부분 생존을 위해 저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모멸감과 고통을 견뎌 왔고 (시스템이 변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견뎌야하기 때문이다. 대학입시에서 점수 몇 점에 합격/불합격이 갈릴 때, 스펙을 쌓고 면접을 볼 때, 회사에서 부당한 상황에서조차 상사에 비위를 맞춰야 할 때 등 수많은 부조리 앞에서 말이다. 다만 다른 것은 쇼미더머니는 그것을 TV로 보여주었다는 것뿐이다.
만약 래퍼에게 ‘노조’가 있었다면 (노동자로 분류될 수 있는지의 문제는 차치하고) 어땠을까? 노조의 목적은 노동자의 사회적ㆍ경제적인 지위 향상이므로 지금보다 랩을 해서 생존하기 더 좋은 환경이라는 것을 가정한다. 우선 래퍼/인간에 대한 존중 없이 그런 말도 안 되는 룰 안에 참가자를 우겨넣은 PD의 목은 달아났을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래퍼는 자신과 힙합음악의 최소한의 존엄을 위해 쇼미더머니를 보이콧 할 것이고 방송에 대한 Diss곡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동료 뮤지션을 최악의 상황에 밀어 넣게 방관한 심사위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지금보다 훨씬 거세였을 것이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권력을 가진 자본이다. 기업은 방송에 광고를 보내고, 광고는 시청률에 따라 좌우된다. 따라서 점점 자극적인 소재가 등장할 수밖에 없고 시청자들은 점점 자극에 대한 역치가 높아져 간다. 프로그램은 점점 극단적이 될 수밖에 없고 고통은 참가자 즉 평범한 인간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PD가 공공의 적이 된 것은 타탕하지만 그 역시 시청률로 인해 모가지가 날아갈 상황일수도 있기에 어찌 보면 장기 말 같은 도구적 존재다.
심사위원들은 동료 래퍼들에 대한 disrespect을 방관하는 대가로 방송권력/자본에게 자신들의 음악적 권위를 보장받고 있다. 심사위원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만으로는 비난하지 않겠다. 각자의 욕망과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송이 보여준 참가자와 문화에 대한 disrespect에 대한 ‘방관’은 문제일 수밖에 없으며 심사위원 각자 해명이 필요하다. 그들 스스로 참가자들이 같은 음악을 하는 ‘동료’라고 생각하고 문화를 존중한다면 말이다. 심사위원들이 자리에 앉아 있지만 프로그램에 기본 룰에 대해 항의할 권한이 없는 꼭두각시라고 고백하던가 아니면 비겁함을 사과해야 한다. 혹시 그들은 경쟁이라면 이런 그림 역시 필요하다고 보는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사진05], [사진06]
“쇼미더머니”라는 대학, 래퍼들은 대학거부 할 수 있을까?
이제 다시 제목으로 돌아왔다. 대학과 쇼미더머니라는 일반적으로 전혀 무관하게 여기는 두 가지를 연결시키기 위해 많은 이야기가 필요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는 대학에 가야만 한다. 래퍼는 마찬가지의 이유로 쇼미더머니에 나가야 한다. 굴종과 패배의 이분법 속에서 벗어나는 길은 엄친아가 되는 것도 랩스타가 되는 것도 아니다. 구조를 바꾸는 길은 룰 밖으로 나가서 본질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소수의 미디어에 의해 간택된 음악가들은 거대 엔터테이먼트의 힘을 빌어 시장을 독점하고, 결과적으로 분배 문제 등의 구조적인 문제는 은폐된다. 열심히 노력해서 스타가 되면 성공할 수 있으니 남 탓하지 말고 음악에만 집중하라고, 뮤지션은 음악으로‘만’ 말하라고 말한다. 소수의 사람이 성공을 해도 마찬가지로 대다수는 여전히 구조에 의해 피해 받지만 말이다.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교과서적인 답이지만 대안은 노동자가 노조를 설립해 노동운동으로 권리를 쟁취하듯, 래퍼 역시 자기계급의 이익에 맞는 철학과 사상을 가지고 집단적인 운동을 통해 래퍼 일반의 이익과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언급했던 대로 음원사이트에 대한 문제제기와 음악이 노동이라는 인식의 확립/공연 페이에 대한 사회적 기준 확립이 필요하다. 또 지역 음악 신을 만들고, 자본에 종속돼지 않은 자생적인 문화와 상생을 위한 음악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향유자들에게도 새로운 음악의 가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노력이 시작된다면 ‘Show me the money’라는 천박한 구호 아래서, 경쟁에 우위를 가지기 위해 자극적인 가사를 쓰지 않아도, 동료 래퍼들의 마이크를 뺏어 상대를 밟고 올라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진3]
‘대학’이라는 간판에 의해 연봉 천만 원 단위가 달라지고 쇼미더머니 같은 TV프로그램 출연이 공연 페이에 0을 하나 더 붙여준다고, 더 좋은 인간이 되거나 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대학을 입맛대로 구조조정을 해서 인간의 가치탐구와 표현활동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부를 폐지한다. 대부분의 대학생이 노동자로 살아갈 것이지만 경영 복수전공을 통해서 경영자의 논리를 몸에 체화한다. 그들은 남들보다 무엇이 뛰어난지를, 얼마나 가치 있는 상품인지를 끊임없이 증명하길 요구된다. 대부분의 래퍼가 랩스타가 아닌 투잡을 하거나 랩을 그만두겠지만 자신만이 성공할 것이고 다른 래퍼들은 루저라는 말을 되풀이해야 한다. 명문대 나온 래퍼의 학력이 인기의 요소가 되고, 래퍼의 가사는 서열 높은 대학의 학생이 '지잡대'생을 차별하는 혐오와 똑같이 닮아있다.
룰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그것에 의해 지배당할 때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 돼버린다. 스눕독(snoop dogg)의 권위를 앞세운다고 해도 부당함 앞에서 침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음악의 성과와, respect과는 별개로 쇼미더머니에서 페이를 받고 불공정한 룰을 옹호하는 궤변을 할 때는 엠넷과 방송국의 자본의 논리를 지키는 경비견 밖에 되지 않으니 말이다.
[사진1,2,4]
자소서를 써야만 하는 평범한 인간과, 쇼미더머니에 나갈 수밖에 없는 래퍼, 전혀 별개의 사실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자본과 인간과의 ‘연결고리’는 평등하지 않기에 개목걸이일 뿐이다. 우리는 그것을 끊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 대해 노래하고 싸워야 한다.
<함께 읽어볼만한 책>
투명가방끈 -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 :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대한 불복종 선언
오찬호 -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생활고’ 인디음악인들 권리 찾기 나섰다 한겨레, 사회 일반 (2012-02-09)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8372.html [본문으로]
- 뮤지션 유니온 : 해시태그 #musiciswork와 함께 ‘음악도 노동이다.’ 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얼마 전 “넌 아직도 돈 내고 노래 듣니?”라는 싸이코패스 같은 문구로 음악인들과 대중들의 분노를 한 몸에 받은 삼성 밀크뮤직 앞에서 음악을 통한 1인 시위, 세월호 1주기 기억음반 ‘그 봄을 다시 기다립니다’ 발표 등을 하면서 음악활동과 동시에 꾸준한 사회참여를 하고 있는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관련기사 : 밀크뮤직 광고논란 뮤지션유니온 삼성전자 앞 1인 시위 나서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438700 뮤지션유니온, 세월호 1주기 기억음반 발표 ‘그 봄을 다시 기다립니다’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495086 [본문으로]
- (구)두리반 : 2009년 12월 24일 강제철거에 항의하며 농성하기 시작하여 "사막의 우물", "작은 용산" 등의 별명으로 불렸다. 자립음악생산자조합을 비롯한 음악인들 및 활동가들이 동참해 칼국수 음악회, 자립음악회를 비롯해 다양한 행사를 이어갔다. 2011년 6월 8일, 재개발 시행사 남전 디앤씨와의 합의가 이뤄져 마포구청에서 합의문 조인식을 치렀다. 시행사 측에서 새 가게를 제공하고, 두리반과 두리반 대책위원회는 7월 초까지 예정된 행사들을 마치고 건물을 비워주며, 상호간의 민형사 고소, 고발을 모두 취하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농성 531일, 단전 324일 만의 일이었다. (출처 크르르르) [본문으로]
- 자립음악생산조합 : 일련의 음악가들이 모여 창립한 일종의 음악가 조합. 자립적인 음악생산의 물질적/정신적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창립되었으며, 2011년에 뉴타운 컬쳐파티 51+에서 정식으로 발족. 음악가와 지지자가 cms를 통해 조합비를 내며, 앨범 제작비 지원 등 음악가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해준다. [본문으로]
-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도시에서 비교적 빈곤 계층이 많이 사는 정체 지역(도심 부근의 주거 지역)에 저렴한 임대료를 찾는 예술가들이 몰리게 되고, 그에 따라 이 지역에 문화적/예술적 분위기가 생기게 되자 도심의 중상층/상류층들이 유입되는 인구 이동 현상이다. 따라서 빈곤 지역의 임대료 시세가 올라 지금까지 살고 있던 사람들(특히 예술가들)이 살 수 없게 되거나, 지금까지의 지역 특성이 손실되는 경우가 있다. [본문으로]
- The Ugly Junction : 래퍼 화나가 광흥창에 설립한 문화공간으로 “독립 창작인의 자생적 환경이 무너지고, 대규모 옴니버스 행사나 쇼미더머니, 언프리티 랩스타 등 대형 미디어만이 활개를 치고 있는 환경에, 문화 창작자들의 자생적 생태계 구축을 전폭 지원할 것”이란 취지를 전면에 걸고 있다. [본문으로]
- ‘쇼미더머니’ 여성비하 랩 가사 논란, 왜 문제시해야 하는가 (남성훈, 리드머) http://board.rhythmer.net/src/go.php?n=16314&m=view&s=feature [본문으로]
- 이데올로기 : <철학> 사회 집단에 있어서 사상, 행동, 생활 방법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관념이나 신조의 체계. 역사적ㆍ사회적 입장을 반영한 사상과 의식의 체계이다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본문으로]
- 기균충 : 농어촌 전형이 포함되는 기회균형선발전형에 ‘벌레 충’(蟲)자를 붙인 단어 [본문으로]
- 지균충 : 지역균형선발 비하 단어 관련기사 : 학과 안으로까지 파고들며 ‘차별의 세분화’ (박선희, 서지원)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7509.html [본문으로]
- Swagger은 원래 래퍼가 실력과 자신감을 보여줄 때 쓰이는, 일종의 힙합의 클리셰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Swagger에 ‘Wack’(형편없는) 이라는 단어를 합성해 많은 경우에 Swagger은 ‘형편없다’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본문으로]
- 쇼미더머니 프라스타일 clip Show Me The Money Season 4 EP 6 쇼미더머니 시즌4 4회 예고 [본문으로]
- 싸이퍼(Cypher) : MC들이 모여서 원을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 즉흥 랩이나 쓰여 있는 랩을 주고받는 행위, 모임, 놀이문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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