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미더머니라는 대학,

래퍼들은 대학거부 할 수 있을까? <하>

 

시원한 형

 

 

스웩알러지 (Swack Allergy)

 

<문제> 다음 중 정치적인 문장을 찾아보시오.

1.내가 형이니깐 말 놔도 되지?

2.(광고)엄마가 해준 집밥 그대로의 맛!

3.2016년 투명대 합격자 가방고등학교 홍길동

4.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의 자질이 없다.

 

 문제의 답은 문단의 마지막에 공개하겠다. 앞 문단에서도 조금씩 단서를 제공했지만 음악은 나아가서 예술은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콘텐츠다. 단순히 가사(텍스트) 뿐만 아니라 방송/엔터테이먼트와의 역학관계, 예술에 창작에 영향을 주는 요소 역시도 정치적이다. 이데올로기는 삶의 스며든 관념들로 이미 인간의 행동이나 사상, 생활 방법 등을 구속하고 있다. 하지만 숲속에서 숲을 볼 수 없듯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삶의 이데올로기가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기 힘들다. 게다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몰라도 먹고 사는데 지장 없고 심지어 그런 불온한(?)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 좋은 직장에 취직해 애완견이 될 기회를 박탈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래퍼들의, 향유자들의, 일반 대중들의 의식은 ‘Just music’, ‘음악은 음악일 뿐이라는 인식으로 지배된다.

 

 이 사회에서는 매년 연례행사처럼 입시경쟁으로 인해 고등학생들이 자살하고, 취업이 꿈이 되어 스펙을 쌓기 위해 자신의 삶을 착취당한다. 기균충[각주:9], 지균충[각주:10], 지잡대 같은 학력차별과 혐오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고 있다. 여성,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성형한 사람을 대상으로 성괴라는 낙인을 찍는 등의 외모차별도 심각하다. (이것 말고도 무수히 많지만) 이것들은 모두 함께 살고 있는 특정 계층 및 소수자들에게 대한 폭력이다. 따라서 이미 경쟁지상주의와 차별, 혐오의 이데올로기로 가득 찬 사회에서 래퍼들의 스웩(Swagger)’은 단순한 기믹(gimmick)이나 문화적 특성뿐만이 아닌 정치적 스탠스일 수밖에 없다.

 음악은 나아가서 예술은 향유자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부조리에 저항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해방의 시간을 부여하기도 한다. 스웩이, 멋진 래퍼에 대한 동경이나 대리만족을 통한 동기부여로써의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멋이 특정 계층을 차별하고 혐오함으로써 성립된다면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것에 대한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스웩은 어쩌면 힙합문화를 지탱해온 큰 줄기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함으로써 전염병처럼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나 역시 힙합음악의 팬으로서, 특히 한국힙합에서 기술적인 부분를 넘어 정치적인 부분까지도 온전히 마음을 줄 수 있는 음악과 이런 정치적인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큰 괴로움을 느꼈다. 때문에 난 지금 이 누군가에겐 불필요한논란이 너무나 반갑다.

 

 난 꿈꾼다. 스웩이 타인을 차별/혐오하지 않는,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멋을 나타낼 수 있기를, 그 성숙한 멋을 위해 필요한 것은 스웩(Swack)[각주:11]이 아닌 스웩알러지(Swack allergy). 꿈은 눈을 감고 꾸는 것이지만 난 눈을 감고만 있진 않을 것이다.

 

*정답은 1,2,3,4 번 모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쇼미더머니에 안 나가냐고 묻지 마라.

 

[사진 00]

 

 

 이 글의 제목을 보면서 근본적인 질문을 할 수도 있다, 거부냐고. 언급하기도 싫지만, TV를 통해 봤던 끔찍하고 충격적인 장면을 통해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717일 금요일 ‘Show Me The Money Season 4 EP 4에서[각주:12], 갑작스럽게 미션3에 통과한 래퍼들을 새벽에 방송국으로 불러냈다. 스눕독(snoop dogg)이라는 전설적인 래퍼를 데려다 놓고 참가자들에게 프리스타일 싸이퍼(Cypher)[각주:13]를 시켰다. 문제는 제한시간 10분을 부여하고 4명을 탈락 시킨다는 규칙이다. 결과적으로 10분 안에 랩을 해야 됐고 따라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서로 마이크를 뺏어서 랩을 해야만 했다.

 

 그 장면은 너무 끔찍했고 래퍼로서, 한 인간으로서 분노가 치밀었다.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이를 보고 래퍼들이 자존심이 없다고 비난하는 이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많은 이들은 동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왜냐면 인간들은 대부분 생존을 위해 저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모멸감과 고통을 견뎌 왔고 (시스템이 변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견뎌야하기 때문이다. 대학입시에서 점수 몇 점에 합격/불합격이 갈릴 때, 스펙을 쌓고 면접을 볼 때, 회사에서 부당한 상황에서조차 상사에 비위를 맞춰야 할 때 등 수많은 부조리 앞에서 말이다. 다만 다른 것은 쇼미더머니는 그것을 TV로 보여주었다는 것뿐이다.

 

 만약 래퍼에게 노조가 있었다면 (노동자로 분류될 수 있는지의 문제는 차치하고) 어땠을까? 노조의 목적은 노동자의 사회적경제적인 지위 향상이므로 지금보다 랩을 해서 생존하기 더 좋은 환경이라는 것을 가정한다. 우선 래퍼/인간에 대한 존중 없이 그런 말도 안 되는 룰 안에 참가자를 우겨넣은 PD의 목은 달아났을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래퍼는 자신과 힙합음악의 최소한의 존엄을 위해 쇼미더머니를 보이콧 할 것이고 방송에 대한 Diss곡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동료 뮤지션을 최악의 상황에 밀어 넣게 방관한 심사위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지금보다 훨씬 거세였을 것이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권력을 가진 자본이다. 기업은 방송에 광고를 보내고, 광고는 시청률에 따라 좌우된다. 따라서 점점 자극적인 소재가 등장할 수밖에 없고 시청자들은 점점 자극에 대한 역치가 높아져 간다. 프로그램은 점점 극단적이 될 수밖에 없고 고통은 참가자 즉 평범한 인간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PD가 공공의 적이 된 것은 타탕하지만 그 역시 시청률로 인해 모가지가 날아갈 상황일수도 있기에 어찌 보면 장기 말 같은 도구적 존재다.

 

 심사위원들은 동료 래퍼들에 대한 disrespect을 방관하는 대가로 방송권력/자본에게 자신들의 음악적 권위를 보장받고 있다. 심사위원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만으로는 비난하지 않겠다. 각자의 욕망과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송이 보여준 참가자와 문화에 대한 disrespect에 대한 방관은 문제일 수밖에 없으며 심사위원 각자 해명이 필요하다. 그들 스스로 참가자들이 같은 음악을 하는 동료라고 생각하고 문화를 존중한다면 말이다. 심사위원들이 자리에 앉아 있지만 프로그램에 기본 룰에 대해 항의할 권한이 없는 꼭두각시라고 고백하던가 아니면 비겁함을 사과해야 한다. 혹시 그들은 경쟁이라면 이런 그림 역시 필요하다고 보는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사진05], [사진06]

 

쇼미더머니라는 대학, 래퍼들은 대학거부 할 수 있을까?

 

 이제 다시 제목으로 돌아왔다. 대학과 쇼미더머니라는 일반적으로 전혀 무관하게 여기는 두 가지를 연결시키기 위해 많은 이야기가 필요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는 대학에 가야만 한다. 래퍼는 마찬가지의 이유로 쇼미더머니에 나가야 한다. 굴종과 패배의 이분법 속에서 벗어나는 길은 엄친아가 되는 것도 랩스타가 되는 것도 아니다. 구조를 바꾸는 길은 룰 밖으로 나가서 본질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소수의 미디어에 의해 간택된 음악가들은 거대 엔터테이먼트의 힘을 빌어 시장을 독점하고, 결과적으로 분배 문제 등의 구조적인 문제는 은폐된다. 열심히 노력해서 스타가 되면 성공할 수 있으니 남 탓하지 말고 음악에만 집중하라고, 뮤지션은 음악으로말하라고 말한다. 소수의 사람이 성공을 해도 마찬가지로 대다수는 여전히 구조에 의해 피해 받지만 말이다.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교과서적인 답이지만 대안은 노동자가 노조를 설립해 노동운동으로 권리를 쟁취하듯, 래퍼 역시 자기계급의 이익에 맞는 철학과 사상을 가지고 집단적인 운동을 통해 래퍼 일반의 이익과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언급했던 대로 음원사이트에 대한 문제제기와 음악이 노동이라는 인식의 확립/공연 페이에 대한 사회적 기준 확립이 필요하다. 또 지역 음악 신을 만들고, 자본에 종속돼지 않은 자생적인 문화와 상생을 위한 음악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향유자들에게도 새로운 음악의 가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노력이 시작된다면 ‘Show me the money’라는 천박한 구호 아래서, 경쟁에 우위를 가지기 위해 자극적인 가사를 쓰지 않아도, 동료 래퍼들의 마이크를 뺏어 상대를 밟고 올라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진3]

 

 

 

 ‘대학이라는 간판에 의해 연봉 천만 원 단위가 달라지고 쇼미더머니 같은 TV프로그램 출연이 공연 페이에 0을 하나 더 붙여준다고, 더 좋은 인간이 되거나 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대학을 입맛대로 구조조정을 해서 인간의 가치탐구와 표현활동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부를 폐지한다. 대부분의 대학생이 노동자로 살아갈 것이지만 경영 복수전공을 통해서 경영자의 논리를 몸에 체화한다. 그들은 남들보다 무엇이 뛰어난지를, 얼마나 가치 있는 상품인지를 끊임없이 증명하길 요구된다. 대부분의 래퍼가 랩스타가 아닌 투잡을 하거나 랩을 그만두겠지만 자신만이 성공할 것이고 다른 래퍼들은 루저라는 말을 되풀이해야 한다. 명문대 나온 래퍼의 학력이 인기의 요소가 되고, 래퍼의 가사는 서열 높은 대학의 학생이 '지잡대'생을 차별하는 혐오와 똑같이 닮아있다.

 

 룰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그것에 의해 지배당할 때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 돼버린다. 스눕독(snoop dogg)의 권위를 앞세운다고 해도 부당함 앞에서 침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음악의 성과와, respect과는 별개로 쇼미더머니에서 페이를 받고 불공정한 룰을 옹호하는 궤변을 할 때는 엠넷과 방송국의 자본의 논리를 지키는 경비견 밖에 되지 않으니 말이다.

[사진1,2,4]

 

 

  자소서를 써야만 하는 평범한 인간과, 쇼미더머니에 나갈 수밖에 없는 래퍼, 전혀 별개의 사실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자본과 인간과의 연결고리’는 평등하지 않기에 개목걸이일 뿐이다. 우리는 그것을 끊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 대해 노래하고 싸워야 한다.

 

<함께 읽어볼만한 책>

투명가방끈 -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 :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대한 불복종 선언

오찬호 -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1. 기균충 : 농어촌 전형이 포함되는 기회균형선발전형에 ‘벌레 충’(蟲)자를 붙인 단어 [본문으로]
  2. 지균충 : 지역균형선발 비하 단어 관련기사 : 학과 안으로까지 파고들며 ‘차별의 세분화’ (박선희, 서지원)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7509.html [본문으로]
  3. Swagger은 원래 래퍼가 실력과 자신감을 보여줄 때 쓰이는, 일종의 힙합의 클리셰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Swagger에 ‘Wack’(형편없는) 이라는 단어를 합성해 많은 경우에 Swagger은 ‘형편없다’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본문으로]
  4. 쇼미더머니 프라스타일 clip Show Me The Money Season 4 EP 6 쇼미더머니 시즌4 4회 예고 [본문으로]
  5. 싸이퍼(Cypher) : MC들이 모여서 원을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 즉흥 랩이나 쓰여 있는 랩을 주고받는 행위, 모임, 놀이문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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